태어남이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운명을 결정하는가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스카이워커 사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가장 상징적이고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영화로 남아 있다. 시리즈 전통의 완결이자, 새로운 정의의 출발점으로서 이 작품은 "혈통으로 정해진 정체성"과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운명" 사이의 긴장과 대립을 중심 서사로 삼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주인공 레이가 다름 아닌 다스 시디어스(팔파틴)의 손녀라는 것이다. 이는 시리즈 내내 지속되어온 ‘혈통의 운명론’을 다시 한 번 소환하며, 스타워즈가 늘 탐구해온 테마 — “선과 악은 타고나는가, 선택하는가?” — 에 정면으로 도전하게 만든다. 그러나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단순히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니라, 그 혈통의 무게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하고, 새로운 이름을 선언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는 결국 말한다. “당신이 누구의 자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당신이 누구로 살기로 선택했는가다.”
이 글에서는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다음 세 가지 축으로 해석한다.
- 혈통의 유산: 팔파틴과 레이, 피로 연결된 저주
- 선택의 힘: 카일로 렌과 벤 솔로의 화해
- 스카이워커의 이름, 계승인가 선언인가
혈통의 유산: 팔파틴과 레이, 피로 연결된 저주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시리즈 내내 베일에 가려졌던 레이의 출신을 드디어 밝혀낸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황제 팔파틴(다스 시디어스)의 후손이라는 사실이다. 이 충격적인 반전은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라, 스타워즈의 오래된 신화 — 피는 배반하지 않는다 — 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레이는 전작들에서 이미 특별한 포스 능력을 보였고, 그 능력은 전통적인 제다이의 훈련 없이도 자연스럽게 발현되었다. 많은 팬들은 그녀의 정체성을 루크 스카이워커의 딸이나 오비완 케노비의 후손일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전통적인 ‘영웅 혈통’이 아닌, 악의 혈통을 가진 존재를 주인공으로 세움으로써 스타워즈 서사의 근간을 뒤흔든다.
팔파틴은 은하 제국을 지배했던 사악한 시스 군주이며, 아나킨을 다크 사이드로 이끈 장본인이다. 그의 이름은 곧 절대 악의 상징이다. 그런 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은 레이에게 있어 단순한 충격을 넘어 존재론적 위기를 의미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누구의 딸도 아닌 자”로 받아들였고, 자신의 힘이 순수하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팔파틴의 손녀라는 진실은 그 모든 믿음을 뿌리째 흔들어버린다.
이 설정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악은 유전되는가?”
“우리는 누구의 피를 물려받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가?”
영화는 이 질문에 양면적인 답을 제시한다. 팔파틴은 혈통의 힘을 믿는다. 그는 말한다. “너는 나의 손녀다. 나의 후계자다.” 그는 레이의 내면에 존재하는 분노와 두려움을 자극하여 그녀가 스스로 다크 사이드로 걸어오기를 유도한다.
그의 방식은 시종일관 같다. 아나킨을 유혹할 때와 마찬가지로, 레이에게도 공포와 분노, 상실을 무기로 삼는다. 그녀의 고립, 그녀의 불안,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이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모두 ‘선택’을 가장한 강요로 몰아간다.
하지만 레이는 다르다. 그녀는 자기 내면의 어둠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정하고, 그것과 싸우며, 결국에는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한다. 이 점이 과거 아나킨과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이며, 스타워즈 서사의 진보이기도 하다.
레이는 자신이 누구에게서 왔는지를 알고도 그 선택을 따르지 않는다. 그녀는 팔파틴의 손녀이지만, 그의 유산을 이어받지 않는다. 이는 “피가 모든 것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구현한 장면이다.
또한 이 설정은 포스의 균형이라는 스타워즈의 근본 주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팔파틴의 핏줄이자, 그의 유산을 거부한 레이는 그 자체로 포스의 균형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그녀는 빛과 어둠 모두를 경험했고, 두 극단을 모두 본 후에야 중심에 선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 대립은 카일로 렌과의 관계 속에서도 다시 드러난다. 카일로 렌은 ‘스카이워커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어둠을 선택했고, 레이는 ‘시스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빛을 선택한다. 이 극단적인 반전은 스타워즈가 더 이상 혈통 중심의 신화를 추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레이를 통해 "누구의 자손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스타워즈라는 서사가 세대와 시대를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언이기도 하다.
선택의 힘: 카일로 렌과 벤 솔로의 화해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진정한 감정적 중심축은 단연 카일로 렌의 구원이다. 그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이며, 이 영화에서는 다크 사이드의 카일로 렌에서 벤 솔로로 회귀하는 서사를 통해 “선택은 언제든 가능하다”는 핵심 메시지를 직접 체현한다.
카일로 렌은 혈통적으로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제자이자, 레아 오르가나와 한 솔로의 아들, 즉 선과 정의의 전통을 이어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스노크(그리고 실제로는 팔파틴)의 조종 아래 어둠을 선택하고, 스스로 이름을 바꾸며 과거의 자신을 지우려 했다. 그는 ‘벤’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다스 베이더의 유산을 잇는 존재로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온전한 확신이 아니라 분노와 상실, 그리고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그는 루크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오해를 품었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부모에게 상처받았으며,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느끼는 내면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악에 기대려 했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이 분열된 인물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그 기점이 되는 사건은 레이와의 듀얼과, 그 이후 레이가 그를 살리는 장면이다. 두 사람의 싸움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내면 깊숙한 갈등을 마주하는 심리적 격돌이다.
레이는 결국 카일로 렌을 쓰러뜨리지만, 그를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생명력을 나눠 그를 치유한다. 이때 레이는 자신의 다크 사이드 유혹을 극복하고, 카일로는 빛의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음을 경험한다.
이후, 카일로 렌은 과거의 기억과 다시 조우한다. 그 순간은 한 솔로가 환영처럼 등장하는 장면에서 정점에 달한다. 한 솔로는 포스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는 카일로의 기억 속에서 다시 등장한, 아들이 아직 잊지 못한 사랑과 용서의 상징이다.
이 장면에서 카일로 렌은 다시 벤 솔로가 된다.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라고 말하고, 말끝을 잇지 못한다. 한은 웃으며 대답한다. “알고 있다.”
이 짧은 대화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응축시킨다. 한 솔로의 용서, 벤의 회한, 그리고 이름을 되찾는 순간의 인간적 회복이 동시에 이뤄진다.
카일로는 다크 사이드에서 돌아온다. 그러나 그 회귀는 단순한 회개가 아니다. 그는 과거의 죄를 인정하고, 지금 이 순간부터 무슨 선택을 할 것인가를 결정한 것이다. 그 선택의 힘이 바로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말하는 구원의 본질이다.
카일로 렌의 구원은 루크나 아나킨과는 다르다.루크는 유혹을 극복한 인물이고, 아나킨은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았지만 모든 것을 잃었다. 반면, 벤 솔로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자신처럼 분열되고 고통받았던 레이였다.
흥미로운 점은, 카일로 렌이 완전히 벤 솔로로 돌아온 후엔 더 이상 포스를 이용하지 않으며, 라이트세이버조차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는 전투 중에도 공격이 아닌 방어와 희생을 선택하며, 레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내어준다.
그 선택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모든 희생 중에서도 가장 조용하고, 가장 인간적인 희생이다. 그는 전장에서 죽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를 지키고, 사랑하며,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한 채로 사라진다.
이 과정은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확히 반영한다.
“당신이 누구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당신을 결정한다.”
벤 솔로의 회복은 단지 한 인물의 구원이 아니라, 스타워즈 전체 서사의 윤리적 핵심, 즉 ‘누구든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의 구현이다.
스카이워커의 이름, 계승인가 선언인가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모든 전투가 끝난 후, 레이는 루크와 레아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행성 타투인(Tatooine)을 찾아간다. 그녀는 그곳에서 두 사람의 라이트세이버를 땅에 묻고, 마치 긴 역사를 마무리하듯 조용한 의식을 치른다.
바로 그 순간, 현지인이 레이에게 묻는다.
“당신 이름이 뭐죠?”
레이는 망설이지만, 곧 하늘에 나타난 루크와 레아의 포스 유체를 바라본 뒤, 단호하게 대답한다.
“레이 스카이워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는 물론, 스타워즈라는 거대한 서사 구조에서 결정적 의미의 전환점이 된다. 왜냐하면 이는 레이가 스카이워커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그 이름을 선택했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스타워즈는 혈통 중심의 신화였다. 스카이워커 가문은 은하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심축이었고, 포스의 흐름조차 그들의 가계도를 따라 움직였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루크, 레아, 그리고 벤 솔로에 이르기까지 0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은 운명적 상속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레이는 그 어느 것도 물려받지 않았다. 그녀는 팔파틴의 후손이자, 제다이의 교리로부터도 멀어진 독립적 존재다. 그녀가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을 택한 것은, 피가 아닌 가치의 계승, 출생이 아닌 선택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것은 현대적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21세기 이후의 영웅 서사는 혈통이나 예언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개인의 선택과 신념,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의 자기정의를 중요하게 여긴다. 레이가 “스카이워커”라고 말하는 순간은 그녀가 더 이상 팔파틴의 유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삶과 서사를 주도하겠다는 선언이다.
또한 이 선택은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의 의미 자체를 확장시킨다. 이제 ‘스카이워커’는 단지 한 가문의 성이 아니라, 포스의 균형, 희생, 정의, 사랑, 그리고 용서를 뜻하는 상징적 코드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루크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라스트 제다이』에서 루크는 제다이의 한계와 오만함을 자각하며 기존 질서의 해체를 요구했다. 레이는 루크가 포기했던 그 정신을 ‘계승’이 아닌 ‘재창조’의 방식으로 이어받는다.
즉, 그녀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그 본질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주체가 된다. 그리고 그 상징이 바로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을 스스로 선택한 행위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은 시리즈 전체를 닫는 마지막 명확한 문장이기도 하다.
"레이 스카이워커."
이 한 문장은 42년간 이어진 스타워즈 신화의 마지막 음절이자, 그 신화를 넘어선 새로운 이야기의 첫 문장이다.
또한 그녀가 스카이워커의 이름을 택한 배경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적 연대와 가치의 공유라는 관점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레이는 루크와 레아, 핀과 포, C-3PO와 BB-8 등 함께 싸운 이들의 가치와 희생을 기억하며 그것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즉,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은 이제 모든 저항자와 희망의 이름이자, 모두가 될 수 있는 상징적 정체성으로 열린다.
스타워즈는 더 이상 폐쇄된 신화의 계보가 아니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그 폐쇄성을 깨뜨리고, 누구든 포스를 느낄 수 있으며, 누구든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가장 민주적이며 현대적인 신화를 새롭게 쓰고 있다.
레이의 마지막 한마디는, 그 모든 변화의 선언문이자 “선택은 혈통을 이긴다”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한다.
마무리: 선택은 혈통을 이긴다, 그리고 새로운 신화가 시작된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단순히 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다. 이 영화는 ‘스타워즈’라는 거대한 신화적 세계관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대답을 제시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는 누구의 후손인가"보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레이는 팔파틴의 후손이라는 진실을 마주한다. 그 진실은 그녀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는 그것을 정체성의 전환점으로 삼는다. 그녀는 빛과 어둠 모두를 본 후,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단순한 개명 이상의 선언이다 — 혈통의 운명을 거부하고, 가치를 계승하겠다는 강한 의지다.
벤 솔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돌아올 용기를 택했다. 그의 마지막 희생은 “과거가 미래를 가둘 수 없다”는 진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진실은 레이의 선택과 함께 스타워즈 세계관에 새로운 균형과 새로운 서사 가능성을 열어준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말한다.
"포스는 누구에게나 깨어날 수 있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는 것이다."
이제 스타워즈는 폐쇄된 가계도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모든 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열린 신화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선언이 바로 타투인의 두 개의 태양 아래, “레이 스카이워커”라는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