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먹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식도락을 위해 도시를 선택하고, 누군가는 지역 명물 음식을 빠짐없이 섭렵하는 것을 여행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행 콘텐츠가 맛집 리스트, 먹방, 지역 특산물 소개에 집중되어 있죠. 하지만 그런 정보들 사이에서, 요즘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1일 1식’을 실천하며 여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루 세 끼를 모두 챙겨 먹기보다는, 단 한 끼를 깊고 충실하게 즐깁니다. 남는 시간에는 걷고, 읽고, 사색하거나 자연을 관찰합니다. 맛집 탐방이 아닌, ‘나를 위한 식사’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철학. 이 글에서는 바로 그런 ‘1일 1식 여행자들’의 소박하고 밀도 있는 미식 여행법을 깊이 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1. 왜 1일 1식인가 – 적게 먹지만, 깊게 맛본다
1일 1식이라는 단어는 흔히 다이어트 방법이나 건강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자들에게 1일 1식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 제한이 아닌, ‘소비 중심 여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과 마음의 선언’입니다. 많은 음식과 장소를 소비하기보다는, 한 끼를 충분히 음미하며 삶의 속도를 줄이려는 태도입니다.
1일 1식 여행자들은 대개 이런 이유로 이 방식을 선택합니다:
- 매 끼니마다 선택에 피로감을 느낄 때
- 음식의 질보다 양에 집중되는 기존 여행 방식에 회의감을 느낄 때
- 과잉섭취로 여행 중 불편한 몸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을 때
- 식사 외 시간을 좀 더 나를 위한 감정에 집중하고 싶을 때
하루 한 끼를 선택하는 일이 오히려 여행 전체의 리듬을 바꾸어 줍니다. 단 한 끼지만, 나를 위한 최고의 장소에서, 최고의 시간에,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식사는 단순한 식사 이상의 감정적 울림을 줍니다.
2. 1일 1식 여행자의 하루 루틴 – 비워낸 만큼 더 충만하다
이들의 여행 루틴은 일반적인 여행자와는 다릅니다. 이른 아침, 작은 텀블러에 따뜻한 물이나 커피를 담고 동네를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조용한 공원이나 강가에 앉아 아침 노트를 쓰고, 점심 시간까지는 걷거나 책을 읽으며 배고픔을 자연스럽게 느껴갑니다. 일부러 허기를 기다리는 이 시간은 오히려 감각이 예민해지고, 풍경을 더 깊게 받아들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정오쯤, 하루 중 가장 소중한 한 끼를 먹기 위한 식당을 향합니다. 이 식당은 미리 검색해서 고른 맛집이기도 하고, 현지인에게 물어서 찾은 숨은 가게이기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내가 이 음식을 기다려왔다는 마음’, 그리고 ‘나를 위해 이 순간을 온전히 쓰겠다는 결심’입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소화와 감상을 위한 산책이 이어집니다. 더 이상의 음식 계획은 없습니다. 오후와 저녁 시간은 소화하듯 천천히 흘러갑니다. 갤러리를 찾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도시의 일상 소음을 배경 삼아 시간을 보냅니다. 1일 1식 여행자에게 있어, 이 소소한 하루는 절제의 여행이자, 깊이의 여행입니다.
3. 국내에서 실천 가능한 1일 1식 여행지
① 전북 군산 – 근대미식과 감성 산책의 도시
군산은 아침보다는 오후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이성당’ 같은 유명한 빵집을 피해서, 오후 1시쯤 한적한 군산 쌍용횟집에 가서 회덮밥 하나를 시켜보세요. 양식이 아닌 한국식 한 상을 천천히 받아들이며, 도시의 리듬과 내 속도에 맞춘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식사 후엔 오래된 철길과 초원사진관, 은파호수공원을 거닐며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하루 한 끼만으로도 충분히 ‘군산에 다녀왔음’을 느낄 수 있는 여정입니다.
② 강릉 경포 – 커피 한 잔이 식사가 되는 해변
강릉의 아침 해변은 조용합니다. 이른 아침 커피 한 잔과 잔잔한 파도 소리로 하루를 열고, 점심쯤 ‘교동반점’에서 짬뽕 한 그릇을 먹습니다. 그 후론 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커피거리에서 책을 읽거나, 해변길을 천천히 걷거나. 한 끼가 주는 에너지를 하루 종일 곱씹는 여행, 그 여백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습니다.
③ 제주 서귀포 – 귤 향 가득한 1식의 섬
제주는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동시에 가장 단순한 여행이 어울리는 곳입니다. 서귀포의 작은 밥집 ‘춘심이네’에서 고등어구이 정식을 여유롭게 즐기고, 나머지 하루는 외돌개 해변이나 오설록 녹차밭에서 걷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음식이 몸을 채우고, 풍경이 마음을 채우는 순환이 완성됩니다.
4. 해외에서 경험한 1일 1식 – 현지에 섞이는 법
① 일본 교토 – 정갈함의 절정
교토는 하루 세 끼가 아니라, 하루 한 끼에 가장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전통 가이세키 요리는 조용한 정원과 다다미방에서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위해 아침과 저녁을 비워둡니다. 낮 한 끼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면, 나머지 시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화됩니다.
② 베트남 하노이 – 분짜 한 그릇이 모든 여행이 될 때
하노이는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도시지만, 그 중 하루 한 끼만 고르면 분짜입니다. 시원한 육수와 구운 고기의 조화, 쌀국수보다 복잡하지 않은 그 단순함이 오히려 오래 남습니다. 작은 골목 식당에서 오로지 음식에 집중하는 경험은, 빠르게 소비되는 미식 여행과는 다른 기억을 선사합니다.
③ 이탈리아 시에나 – 와인과 파스타로 하루를 정리하다
시에나는 작은 언덕 마을이지만, 그 속에서의 하루는 풍부합니다. 점심 즈음 현지 와인 한 잔과 파스타, 그리고 젤라또까지 마무리한 뒤, 오후엔 그늘진 광장에 앉아 현지인들과 같은 템포로 머물면 됩니다. 더 많은 것을 보지 않아도, 단 한 끼로 도시를 느낄 수 있는 방법입니다.
5. 한 끼에 담긴 진짜 여행 – 속도보다 감정의 밀도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하루에 세 끼 먹어야 여행이 풍요롭지 않냐”고. 하지만 1일 1식 여행자들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루 한 끼면,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니까.” 더 많이 먹기보다, 더 깊이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방식은 매우 적합합니다. 허기를 통해 풍경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음식의 작은 향조차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여행은 결핍이 아닌 충만의 여행입니다. 물리적인 음식 섭취는 줄었지만, 감정과 감각은 오히려 농축됩니다. 때로는 너무 많은 선택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음식마저 ‘체크리스트’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런 피로감 속에서 1일 1식 여행은 새로운 방식의 해방이 됩니다.
6. 마무리 – 여행이 기억되는 방식은 스스로가 정하는 것
세 끼를 알차게 먹는 여행도 훌륭하지만, 한 끼를 깊게 남기는 여행도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건 정보보다 감정이고, 인증보다 감응입니다. 음식은 여행의 수단이자 목적이 될 수 있지만, 그 방식은 반드시 ‘많이’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다음 여행에서 몸이 무겁지 않기를, 선택의 피로감 없이 걸을 수 있기를, 그리고 단 한 끼를 통해 도시와 깊이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바로 1일 1식 여행자의 가장 아름다운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