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세계관에서 한 솔로(Han Solo)라는 이름은 단순한 캐릭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반항적인 무법자이자, 냉소적인 밀수업자이며,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영웅이었다. 루크 스카이워커와 레아 공주처럼 뚜렷한 ‘운명’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의 선택은 종종 은하계를 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8년 개봉한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그러한 상징적 인물의 ‘기원’을 다룬 최초의 공식 서사다. 이 영화는 한 솔로의 유년 시절, 제국 하의 코렐리아에서의 탈출, 밀수꾼이 되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그의 운명을 바꾼 두 인물 — 츄바카(Chewbacca), 그리고 밀레니엄 팔콘(Millennium Falcon)과의 운명적 만남을 그린다.
이야기는 단지 "과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스타워즈 세계의 상징적 인물이 왜 냉소적이고, 왜 거리감을 두며,무엇을 신뢰하고, 또 무엇을 잃었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초상화다.
이 글에서는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를 통해 다음 세 가지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 한 솔로의 과거: 자유를 꿈꾼 범죄자
- 츄바카와의 만남: 우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밀레니엄 팔콘: 한 남자와 우주의 집
한 솔로의 과거: 자유를 꿈꾼 범죄자
한 솔로는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이기적인 밀수꾼’이라 소개하지만, 언제나 가장 위험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용감하고 정의로운 선택을 한다.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그런 그의 성격과 선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가 늘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시작점이다.
영화는 코렐리아(CorelIa)라는 산업화된 도시행성에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의 한은 갱단 ‘화이트 웜즈’에 붙잡혀 살아가며,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과 밀수에 익숙해진 삶을 살아간다. 그는 단지 생존을 위해 범죄의 세계에 몸을 담았지만, 항상 그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은하계로 떠날 꿈을 품고 있었다. 이 시점의 한은 아직 냉소적이지 않고, 누군가를 신뢰할 줄 알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기를 진심으로 꿈꾸는 순수한 젊은이다.
그가 가장 신뢰하던 사람은 연인이자 동료였던 키라(Q'ira)다. 두 사람은 함께 도망쳐 자유를 찾기로 약속하지만, 탈출 도중 한만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키라는 조직에 남겨진다. 이때 한은 처음으로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을 놓치는 상실감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 상처는 훗날 그가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단순히 “세상은 위험하니까”가 아니라, “나는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없었으니까”라는 자책이 그의 내면을 지배한다.
이후 한은 자유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제국 해군에 자원입대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그는 군대에서도 규율과 위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 인물로 분류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한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는 본질적으로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제국이 정의가 아님을 깨달은 후, 그는 결국 탈영에 가까운 방식으로 떠나고, 베킷(Beckett)이라는 베테랑 범죄자를 만나 밀수와 강도라는 ‘진짜 어둠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베킷은 한에게 “사람을 믿지 마라”, “진심은 약점이다”라는 냉혹한 생존철학을 가르친다. 이 교훈은 한의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그를 더욱 냉소적이고 거리 두는 인물로 만든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믿고 싶어 하는 소년”이 살아 있다.
한은 베킷의 철학을 흡수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는 필요한 순간에 동료를 지키고, 거짓말과 배신 속에서도 자기만의 기준을 지키려 한다.
중요한 점은, 한이 자신의 삶을 결코 ‘영웅적인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를 "그냥 운 좋은 밀수꾼"이라 낮춰 말하며, 포스나 혁명 같은 큰 이념보다는, “당장 눈앞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그를 가장 현실적이며 인간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많은 인물들이 ‘예언’이나 ‘선택된 운명’에 의해 움직일 때,한 솔로는 자신의 선택으로 길을 개척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지도 않고, 정해진 길을 걷지도 않는다. 오직 자유를 위해 움직이며, 그 자유를 위해선 때론 총을 들고, 때론 사람을 속이고, 때론 자기 자신을 속인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그는 항상 어떤 “선한 가능성”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 가능성은 나중에 루크, 레아, 츄바카, 그리고 반란군과의 인연 속에서 구체화된다.『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바로 그 가능성이 어떻게 태어났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전설적인 밀수꾼 한 솔로의 기원을 단순한 스핀오프가 아닌, 상실, 생존, 배신, 믿음, 자유에 대한 이야기로 재해석하며, 스타워즈 전체 세계관에 한 솔로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다시금 증명해 보인다.
츄바카와의 만남: 우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스타워즈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듀오를 꼽으라면, 한 솔로와 츄바카만큼 강한 유대를 보여주는 조합은 없다. 이 둘은 단순한 주인공과 조연이 아닌, 생과 사, 배신과 신뢰, 전쟁과 평화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진정한 파트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히 오래된 우정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족과 가치관이 충돌하면서도 진심으로 이어진 ‘선택된 가족’의 대표적 사례다.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이 역사적 파트너십의 기원을 놀라울 정도로 원초적이고 잔인한 조건에서 출발시킨다.
영화 속에서 한 솔로는 제국 군대 내에서 명령 불복종으로 체포된 후, ‘괴물’에게 던져진다. 그 괴물은 다름 아닌 우키족(Wookiee)의 전사, 츄바카(Chewbacca)였다. 제국은 반항적인 우키를 굶주리게 만든 뒤, 죄수들을 던져 넣어 죽게 하는 방식으로 그를 고문해 왔다. 한과 츄바카의 첫 만남은 피 냄새와 진흙이 가득한 지하 감옥 속에서, ‘죽이느냐 죽느냐’의 조건 아래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난다. 한은 위기의 순간에 우키어(Shyriiwook, 츄바카의 언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진심으로 “싸우지 말자”라고 말하며, 함께 탈출하자고 제안한다. 이때 츄바카의 반응은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자신이 짐승이 아닌 존재로 취급받는 감정적 회복의 순간이다. 한 솔로는 제국이 츄바카를 괴물로 취급하던 현실 속에서, 그를 처음으로 ‘존재’로 인정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부터 이들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츄바카는 한을 단순한 동료로 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자유를 함께 싸워 나갈 동반자로 받아들인다. 둘은 진흙탕을 빠져나와 탈출에 성공하고, 이후의 모든 전투와 선택의 과정에서 서로를 가장 먼저 고려하는 존재가 된다.
그들의 우정은 말이 필요 없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츄바카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이야기하는 캐릭터이고, 한은 유머와 거짓말, 가벼운 행동으로 진심을 숨기는 캐릭터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나와 네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관된 태도가 존재한다.
츄바카는 단순한 조수나 서브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전사이며, 동맹이며, 동시에 한 솔로의 도덕적 기준이 무너질 때마다 그를 붙잡아 주는 존재다. 한이 순간적인 이익을 위해 배신을 고려하거나 도망치려 할 때, 츄바카의 시선은 무언의 경고로 작용한다.
그들의 관계는 언제나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공유하는 ‘파트너십’의 모델이다.
또한 이들은 서로가 가진 결핍을 메워준다. 한은 가족이 없고, 늘 떠돌며 신뢰를 거부한다. 츄바카는 종족이 노예가 되어 고통받았고, 복수를 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 둘은 피로 맺어진 형제는 아니지만, 경험으로 엮인 가족이 된다. 츄바카는 인간도, 제국도, 반란군도 아닌, 오직 한 솔로와의 연대만을 신뢰하고 그를 끝까지 따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우정이 스타워즈 시리즈 전체에 걸쳐 어떠한 배신도, 갈등도 없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이 루크와 레아 쪽으로 이동하는 시점에도, 츄바카는 질투하거나 분열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묵묵히 한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필요한 순간에 단호하게 한을 지지한다.
이러한 관계는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가 단지 “만남의 시작”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동반자란 무엇인가를 묻는 성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흔히 우정을 감정의 교류나 유머, 혹은 편안함으로 해석하지만,
한과 츄바카는 우정을 신념과 행동, 생존과 책임의 공유로 증명한다.
『로그원』이 무명의 희생을 통해 희망의 기원을 말한다면, 『한 솔로』는 무언의 우정을 통해 신뢰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 신뢰는 혈연도, 언어도, 문화도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단 한 사람의 행동으로 시작된 관계가 한 생애를 통째로 함께할 수 있는 유대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우정은, 훗날 스타워즈 전설의 한 축이 되어 포스가 없는 세상 속에서도 사람의 선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힘이 된다.
밀레니엄 팔콘: 한 남자와 우주의 집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우주선이자, 상징적인 ‘탈것’이라면 단연 밀레니엄 팔콘(Millennium Falcon)이다. 그 어떤 스타 디스트로이어나 X-윙도 이 우주선을 능가하지 못한다. 하지만 밀레니엄 팔콘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스펙 때문이 아니다. 이 우주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한 솔로라는 인물의 인생이 고스란히 새겨진 ‘움직이는 서사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이 전설적인 우주선의 기원을 정면으로 다룬다.영화 속 밀레니엄 팔콘은 처음부터 한의 것이 아니다.
그 소유주는 랜드 칼리시안(Lando Calrissian)이라는 화려하고 세련된 밀수꾼으로, 팔콘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자존심이었다. 초기 모습의 팔콘은 내부가 고급스럽고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넝마 배’ 같은 느낌은 전혀 없다.
그러나 팔콘의 진정한 주인은 랜드가 아니라, 결국 한 솔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팔콘은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하고,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의 손에 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우주선이기 때문이다. 랜드는 팔콘을 과시와 자부심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한은 팔콘을 자신의 피난처이자 무대, 때론 도피처로, 때론 싸움터로 사용하며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팔콘을 손에 넣는 과정 역시 한의 성격을 드러낸다.한은 카드 게임 ‘사백(Sabacc)’에서 랜드를 속여 팔콘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한의 인생철학 — 규칙 속의 반칙, 시스템 속의 빈틈을 노리는 생존자 — 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한은 정면승부보다는 상황을 꿰뚫고, 빠르게 판단하고, 과감히 결정하는 능력으로 팔콘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 우주선과 함께하면서, 그는 단순한 밀수꾼에서 영웅이자 전설이 되어간다. 팔콘은 그저 빠르고 튼튼한 우주선이 아니다. 케셀 런(Kessel Run)을 12파섹 만에 주파한 이력은 단순한 허풍이 아닌, 한과 츄바카가 처음으로 정말로 불가능한 것을 해낸 순간을 의미한다. 이 일화는 훗날 루크, 레아, 레이에게도 ‘영웅의 상징’처럼 회자된다. 즉, 밀레니엄 팔콘은 희망의 수송선, 신화의 매개체가 된 셈이다.
팔콘은 또한, 한 솔로라는 인물이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우주선 안에서 그는 누구보다 솔직하며, 동시에 누구보다 경계한다. 그는 이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친구를 잃고, 동료를 만나며, 새로운 여정을 계획한다. 팔콘은 한의 성격처럼 거칠고 고장 나 있지만, 누구보다도 빠르고 튼튼한 존재로 점차 변모해 간다.
특히 영화 말미에서 팔콘이 한의 소유가 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전까지는 떠도는 인생, 어딘가 머무를 수 없는 존재였던 한이, 팔콘이라는 ‘움직이는 집’을 갖게 되면서, 처음으로 어떤 공간에 소속감을 갖게 된다. 그는 여전히 규칙을 거부하고, 이념에도 거리감을 두지만, 팔콘만큼은 자신의 일부처럼 여기고, 언제나 그 안으로 돌아온다.
이후 루크와 레아, 반란군과 함께하는 모험에서도, 팔콘은 한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공간이자, 가장 자신다울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로 기능한다. 심지어 그가 아버지가 된 이후에도, 한은 여전히 팔콘을 떠나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한 ‘소중한 탈것’이 아닌, 삶 전체를 담아낸 장소, 그리고 기억 그 자체다.
한이 죽은 뒤에도, 팔콘은 계속해서 다음 세대에게 전해진다. 레이가 그 안에서 다시 싸우고, 희망을 이어가며, 팔콘은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상징, 그리고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된다. 한 솔로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 단지 사람들의 기억이 아니라,‘함께한 공간’이자 ‘떠나는 자들의 고향’이 될 수 있는 장소였다는 점에서, 밀레니엄 팔콘은 단순한 우주선 그 이상이다.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그 우주선이 단순한 메탈 덩어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이야기의 중심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솔로와 츄바카의 ‘선택된 가족’의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음을 다시금 일깨운다.
마무리: 자유와 우정, 그리고 한 남자의 전설이 시작되다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단순한 기원(origin) 영화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 작품은 “한 솔로”라는 이름이 왜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오랜 시간 사랑받았는지를 설명해 주는 감정적 근거와 역사적 맥락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그의 총솜씨나 비행 기술 때문이 아니라, 삶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고, 끝내 사람을 믿는 선택을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진흙탕 속에서 시작된 청춘, 배신과 상실을 겪으며 만들어진 냉소, 그리고 그 속에서도 우정을 쌓고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은 한 솔로라는 인물을 단순한 ‘무법자’가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영웅으로 재탄생시킨다.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는 츄바카가 있었고, 둘의 우정은 언어도, 종족도, 전통도 뛰어넘은 ‘신뢰의 순수한 원형’이 되었다. 또한 밀레니엄 팔콘은 한 솔로의 영혼이 깃든 집이 되었고, 그 공간은 훗날 반란의 거점이자 희망의 선봉이 되었다.
한 솔로는 자신이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말한다. “난 그냥 내 길을 갈 뿐이야.”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가 걸어온 그 길이야말로 스타워즈라는 은하의 운명을 바꾼 가장 인간적인 전설이었다는 것을.
『한 솔로』는 말한다.
영웅은 예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우정, 책임을 통해 완성되는 존재라고.
그리고 그 첫걸음을 우리는 이 영화에서 보았다. 자유를 좇은 청년의 발걸음, 그것이 바로 ‘한 솔로’라는 이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