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고독한 작업일지 모르지만, 작가는 언제나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연결의 가장 잦은 통로 중 하나가 서점이었습니다. 책을 고르고, 사람을 만나고, 생각을 정리하던 서점은 작가들의 아지트이자 사유의 실험실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여러 문인들 역시 각자의 시대와 도시에서 특정한 서점을 오랫동안 찾았고, 그 공간은 작품의 배경이 되거나 문장 속에 은밀히 스며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시아 3국의 대표 문인들이 자주 찾았던 서점들 가운데, 실제 존재했거나 현재까지도 운영 중인 공간을 중심으로 작가와 장소,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함께 추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오야마 북센터’
현대 일본 문학의 가장 상징적인 이름,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작품 속에는 도쿄라는 도시의 다양한 장소들이 리얼하게 등장하며, 실제 공간과 상상의 경계가 자주 허물어지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하루키가 단골로 방문했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서점이 바로 아오야마 북센터입니다.
아오야마 북센터는 1980년대부터 도쿄 미나토구 아오야마 지역에서 운영되어 온 독립 대형서점으로, 문학·예술 전문 큐레이션과 일본 문단과의 밀접한 관계로 유명합니다. 이 서점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문학 문화 교류지’로 기능해 왔으며, 하루키 외에도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류 등 다양한 작가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하루키는 이곳에서 외서와 고전문학, 번역본을 집중적으로 구입하곤 했고, 1980년대 후반 그의 인터뷰에서 아오야마 북센터에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 있습니다. 서점 내부는 밝고 미니멀하며, 섹션 간 큐레이션이 철저히 이뤄져 있어 독자 스스로 ‘주제의 숲’을 탐색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현재 아오야마 북센터는 2022년 리뉴얼을 거쳐 다시 운영 중이며, 일본의 문학 공간으로서 기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 서점은 하루키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실제 공간’이 어떻게 작가의 세계관과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한국 – 김소월과 근대 조선 문인들의 ‘조선서관’
한국 근대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 김소월. 그의 시에는 민족의 감정, 서정, 그리고 시대적 고뇌가 오롯이 녹아 있습니다. 그가 시를 쓰던 1920년대, 서울에는 ‘문인들의 사랑방’이라 불리는 서점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조선서관입니다.
조선서관은 1912년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 당시 국내 대표적인 민족 출판·유통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순한 책 판매소가 아니라 작가, 시인, 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원고를 주고받던 ‘문단의 중심’이었습니다. 김소월을 비롯하여 주요한, 이육사, 이상화, 홍사용 등도 이곳에서 책을 읽고 교류했다고 전해집니다.
조선서관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 시대에 보기 드물게 순수 문학서와 민족주의 계열 서적, 시집, 번역서 등을 폭넓게 다뤘다는 점입니다. 특히 소월의 '진달래꽃' 초판 역시 이곳을 통해 유통되었으며, 김소월이 평소 이곳의 직원들과 교류가 깊었다는 회고도 남아 있습니다.
아쉽게도 조선서관은 1945년 이후 종로의 도시 재편과 함께 사라졌지만, 그 자취는 문헌과 문학사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현재 해당 위치는 영풍문고 본점 인근이며, 종로3가 일대 ‘근대서점 거리’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적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소월과 문인들의 단골 서점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한국 문학의 기초를 이룬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중국 – 뤼신과 ‘상무인서관’
뤼신은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단지 작가가 아니라 시대를 바꾼 사상가로 평가받습니다. 그가 남긴 문장만큼이나 주목받는 것이, 그가 머물렀던 공간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상하이에 위치한 상무인서관은 뤼신과 깊은 인연을 가진 출판·서점 공간입니다.
상무인서관은 1897년 상하이에서 설립된 중국 최초의 민간 출판사로, 초기에는 교과서와 서양 철학서 번역을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20세기 초, 뤼신은 이곳과 협력하여 자신의 번역서 및 비평문을 출판했으며, '외국소설집', '중국소설사략' 등도 이곳을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뤼신은 상무인서관이 가진 진보적 출판 정신과 사상적 독립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출판사 안에 마련된 열람실에서 자주 머무르며 책을 읽고 동료 문인들과 토론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의 건물은 상하이 바오싱루에 있었으며,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노베이션되어 상무인서관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관과 함께 독립 서점, 북카페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서점 그 이상입니다.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던 출판사가 지닌 건축적, 문화적 유산이 지금도 공간 속에 살아 있고, 방문자들에게 뤼신이 걸었던 사상과 문학의 길을 조용히 되짚게 합니다.
문인과 서점, 그리고 그 도시의 기억
하루키의 아오야마 북센터, 김소월의 조선서관, 뤼신의 상무인서관. 이 서점들은 단지 책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작가들이 고민하고 관찰하며 삶의 일부를 담아낸 ‘서사적 공간’이었습니다. 서점은 문인의 정신이 드나들던 문턱이자, 도시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문학은 종종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그것이 머문 서점의 흔적은 결국 도시 전체의 문화사로 확장됩니다. 작가와 서점, 그리고 책을 사랑한 도시의 기억은 그렇게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