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고 넘기고 읽는 행위는 언제나 같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시대와 지역, 철학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아시아의 서점들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을 넘어, 건축적으로도 고유한 이야기를 지닌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서점은 도시의 문화 심장부가 되고, 또 어떤 서점은 오래된 동네의 골목을 새롭게 만듭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 중국, 한국의 대표 서점을 통해 건축 양식과 지역 문화, 공간의 쓰임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비교하며 살펴봅니다.
일본 – 츠타야 다이칸야마: 현대 미니멀리즘과 복합문화의 만남
츠타야 다이칸야마는 도쿄에서도 감성적인 공간으로 손꼽히는 ‘T-SITE’ 복합문화공간의 중심입니다. 건축적으로 이 서점이 주는 인상은 명확합니다. ‘새롭지만 조용하다’, ‘현대적이지만 따뜻하다’. 실제 이 공간은 일본 건축사무소 Klein Dytham Architecture가 설계하였으며, 3개의 블록형 구조물이 긴 복도로 연결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외관은 알루미늄 메시로 감싸진 박스형 건물로, 간결한 형태 속에 독특한 디테일이 숨어 있습니다. 메시 패턴은 ‘T’를 형상화한 것이며, 낮에는 햇빛을 부드럽게 투과시키고, 밤에는 조명을 통해 도심 속 조용한 등불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내부가 외부로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개방감이 뛰어나며, 이는 도시와 서점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내부 공간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는 것을 넘어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플랫폼’입니다. 책은 장르가 아닌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서적 외에도 음악, 영상, 커피, 디자인 상품까지 함께 전시됩니다. 천장은 낮고 조명은 은은하게 조절되어 있어, 독자가 편안하게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츠타야 다이칸야마는 건축적으로 미니멀한 외형과 기능 중심 내부 디자인을 통해 ‘조용한 고급스러움’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건축이 추구하는 ‘비움과 채움’, ‘심플함 속 깊이’를 서점이라는 공간으로 옮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중국 – 상하이 중수서국: 고전미와 현대 기술의 충돌
중수서국은 단순히 ‘서점’이라기보다는, 중국 현대 건축 디자인의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하이 매장 외에도 청두, 항저우, 쑤저우 등 다양한 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지만, 상하이점은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공간감을 자랑합니다.
이 서점은 X+Living이라는 중국의 젊은 건축사무소가 설계했으며, ‘건축과 이야기의 결합’을 목표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내부는 유려한 곡선, 대칭, 반사효과를 극대화한 거울 천장과 어두운 조도 등을 통해 마치 비현실적인 ‘책의 성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중앙의 계단형 서가는 책을 진열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조형적 구조물로 기능하며, 책 속에 들어간 듯한 몰입감을 유도합니다.
특히 거울을 활용한 시선의 확장은 건축적으로도 매우 도전적인 시도입니다. 공간을 시각적으로 두세 배 이상 확장시키는 효과를 통해, 독자가 단순히 책을 고르는 소비자가 아닌 ‘공간 안을 떠도는 존재’로 체험되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책이라는 정적인 콘텐츠를 동적인 감각으로 바꾸는 건축적 장치입니다.
중수서국의 건축은 중국이 추구하는 ‘문화적 상징의 현대화’를 잘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서가의 상징성과 현대 기술을 결합하여, 단순한 소매공간이 아닌 문화 관광지로 기능하며, 실제 많은 방문객들이 ‘서점을 구경하러’ 찾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수서국은 책을 파는 서점이 아니라 ‘책을 공간으로 구현한 전시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 로컬 재생과 건축 실험, 마포 ‘별책부록’
서울 마포구 연남동, 오래된 다가구 주택을 개조한 책방 ‘별책부록’은 서점이 도시와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이 서점은 단층 건물을 개조한 협소 공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독립출판·에세이·아트북 중심 큐레이션과 소규모 행사, 지역 작가 연계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건축적으로 별책부록은 ‘협소 건축의 가능성’을 실험한 공간입니다. 약 13평 규모의 건물 내부는 구획을 최소화하여 개방감을 확보하였고, 책장은 벽면 전체를 활용해 수직으로 확장시켰습니다. 내부는 목재 마감과 은은한 노란빛 조명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하여 책의 인쇄물감이 살아나도록 배려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곳의 공간 구성입니다. 책을 보는 좌석은 모두 창가 혹은 벽면에 배치되어 있으며, 중심 공간은 행사나 낭독회를 위한 ‘유동적 공간’으로 유지됩니다. 이는 ‘서점은 진열이 아닌 체험의 장소’라는 철학을 실현하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독립출판 워크숍, 지역 작가 초청 대화, 작은 음악회 등도 비정기적으로 열리며 공간의 쓰임을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별책부록은 서점을 도시 재생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래된 주택이 동네 문화공간으로 전환되었고, 그 중심에는 ‘책과 건축이 사람을 만나게 하는 구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별책부록은 건축, 출판, 지역 문화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의 건축, 건축의 책
아시아의 서점들은 더 이상 책만 진열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일본의 츠타야는 미니멀함과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하고, 중국의 중수서국은 시각적 극장을 연출하며, 한국의 별책부록은 소규모 실험을 통해 공동체와 공간을 연결합니다. 이 서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역성과 건축 언어를 책이라는 콘텐츠에 입혀내고 있습니다.
책의 물성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 오히려 서점의 공간은 더 입체적이고 상징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닌 건축적 언어는 단순한 미감이 아니라, 도시와 문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쓰는 새로운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