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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문화 100년사 – 책의 접근성과 감각 중심 변화

by 머니인사이트001 2025. 4. 21.

우리는 흔히 독서를 ‘눈으로 읽는 행위’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이 정의는 책을 볼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문화는 늘 ‘감각의 전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손끝으로 느끼는 점자, 귀로 듣는 낭독본, 오늘날 AI 음성까지. 책을 읽는 방식은 그들이 접할 수 있는 감각에 따라 수없이 변화해왔고, 그 흐름 속에는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녹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난 100년간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문화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살펴보며, 책의 포용성과 감각 중심 변화를 깊이 있게 탐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점자에서 녹음책까지 – 초기의 감각 독서 문화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의 시작은 ‘촉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루이 브라유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체를 고안했고, 이는 20세기 들어 세계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자는 육점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한 손가락으로도 문자의 조합을 읽을 수 있었고, 이는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독립적인 독서 가능성을 열어주는 혁신이었습니다.

점자 도서는 이후 학교 교육과 도서관을 중심으로 보급되었지만, 제작 시간과 비용, 인쇄의 어려움으로 인해 접근성은 제한적이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점자책으로 옮기기 위해선 수십~수백 페이지가 늘어나며 부피도 커졌고, 다양한 장르보다는 교과서, 종교서적, 기본적인 문학 작품에 집중되었습니다.

1930~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녹음 도서’, 즉 낭독된 내용을 테이프에 담은 오디오북의 원형이 등장합니다. 초기에는 시각장애인용 특수 녹음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콘텐츠들은 각국의 시각장애인 도서관에서 대여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미국의 시각장애인 및 인쇄장애인을 위한 국립 도서관 서비스, 영국의 왕립 시각 장애인 연구소, 그리고 한국의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있습니다.

당시의 낭독 도서는 자원봉사자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제작되었고, 종종 ‘읽기’보다는 ‘전달’ 중심의 단조로운 톤으로 구성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로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경험은 많은 시각장애인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즉, 초기 독서문화는 시각 중심이 아닌 촉각과 청각이라는 ‘대체 감각’에 기반하여 점차 확장되었으며, 이는 독서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문화 100년사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문화 100년사

디지털 전환과 오디오 콘텐츠의 진보

199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 환경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CD-ROM 기반의 디지털 점자도서, MP3 오디오북, DAISY(디지털 접근 가능 정보 시스템) 포맷의 등장 등은 단순히 ‘듣는 책’에서 ‘구조화된 정보 접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특히 DAISY 는 텍스트와 오디오를 함께 제공하면서 사용자가 챕터, 문단, 문장 단위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구조화된 콘텐츠였습니다. 이는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학습장애, 노인 등 정보 접근성이 낮은 이용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포맷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모바일 오디오북 앱이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국내에서는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운영하는 ‘꿈꾸는 도서관’, ‘소리청’, ‘지니북’, 민간에서는 ‘윌라’, ‘밀리의 서재’ 등이 음성 콘텐츠를 제공하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TTS 기반 자동 낭독, 화면 낭독 보조기술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AI 기술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구글의 TTS, Amazon Polly, 네이버 클로바 더빙 기술은 보다 자연스러운 음성으로 책을 읽어줄 수 있으며, 사용자는 다양한 목소리, 속도, 억양 등을 선택해 자기 감각에 맞춘 독서 환경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스크린 리더’ 기술은 모든 전자 문서를 읽어주는 기능을 제공하며, 키보드 조작만으로도 전자책 탐색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시각적 UI가 아닌 음성 중심 UI’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가능케 하며, 독서의 진입장벽을 대폭 낮춘 핵심 기술로 평가받습니다.

요컨대 디지털 오디오북 시대는 단순히 콘텐츠를 듣는 것이 아닌, 사용자 스스로 탐색하고 조작하며 몰입할 수 있는 능동적 독서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독서의 정의 자체를 다시 확장시키는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접근성 중심의 디자인 – 책의 포용성 진화

현대 독서문화는 단순히 책을 ‘보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접근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출판과 디자인은 이제 모두를 위한 독서 환경을 지향합니다.

대표적인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중 콘텐츠 구성: 텍스트+오디오, 점자+일반 활자

- 고대비/가독성 중심 레이아웃 디자인

- 스크린 리더 호환 전자책 포맷(ePub3, DAISY)

- 음성 명령 기반 스마트 스피커와의 연동 독서

이러한 변화는 단지 기술적인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책을 누가 읽을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철학의 확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공공도서관, 학교, 교육기관에서 이러한 ‘포용형 독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으며, 일부 출판사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별도 편집본’을 출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인공지능 기반 음성비서를 통해, 사용자 맞춤형 독서 경험도 구현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김소월의 시 중 조용한 작품을 들려줘”라고 명령하면 감정 분석 기반의 음성 추천이 가능해지며, 이는 시각장애인의 감정과 일상에 최적화된 독서 환경을 제공하는 미래지향적 사례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디자인’의 정의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단지 레이아웃을 짜는 사람을 넘어, 모든 사용자의 감각과 접점을 고려한 접근성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책을 느낀다는 것, 감각과 평등의 이야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문화 100년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책이 어떻게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는지를 향한 감각과 포용의 여정이었습니다. 점자의 손끝에서 시작된 책 읽기는 이제 귀로, AI로, 감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변화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책이 눈에만 보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책입니다. 책은 손끝에서, 목소리에서, 감정 속에서 읽혀야 진짜로 ‘읽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독서문화는 시각 중심에서 모든 감각으로 확장될 것이며, 그 중심에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함께 읽는 책’이 놓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