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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본질을 마주하다 (이터널스, 영원의 시간 속 감정의 무게)

by 머니인사이트001 2025. 10. 18.

《이터널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가장 철학적이고 정적인 영화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초월적인 존재들이 지구에서 수천 년을 살아오며, 인간과 문명, 감정과 윤리에 대해 스스로 정체성을 묻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인간보다 강하고, 시간보다 오래된 존재들이지만, 이터널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갈등과 감정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 이 영화가 독특한 이유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을 넘어, 사랑과 충성, 책임과 자유 사이에서 고뇌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감정의 본질을 깊이 탐색하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장면 중 하나는 드루이가 말하는 대사다. “우리는 사랑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사랑해.” 이 말은 이터널스가 원래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며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단순히 감정의 표현을 넘어서, 본질적으로 “사랑은 인간의 기능이 아니라 존재의 선택”이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대사다. 이 말은 사랑이 본능이 아니라, 의지와 책임의 결과임을 시사하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감정의 작동방식에 근본적인 도전을 가한다.

이터널스는 수천 년 동안 인간과 지구를 관찰하고 지켜온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세상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서다. 그들은 사명을 따를 수도 있고, 인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영화는 이 선택의 기로에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이라는 요소가 결국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중에서도 사랑은 이터널스가 단순한 기능적 존재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라는 증거이며,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

이번 글에서는 《이터널스》에서 언급된 이 명대사를 중심으로, 감정의 본질과 인간다움의 정의, 그리고 사랑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선택과 자유의 철학으로 확장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으며, 왜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돌아보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서술형으로 풀어낸다. 감정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 선택하는 가치라는 사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터널스는 초능력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남긴다.

이터널스
이터널스

명대사가 등장한 장면과 맥락

“우리는 사랑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사랑해.” 이 대사는 《이터널스》의 후반부,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에서 등장한다. 이 말은 단순한 고백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터널스라는 초월적 존재들이 인간적인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이다. 이 대사는 드루이그와 마카리의 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그 감정은 수천 년을 함께해 온 존재들 사이의 공감, 연결, 그리고 선택의 결과로써 등장한다.

이터널스는 본래 셀레스티얼이라는 우주적 존재에 의해 창조된 인공 생명체이다. 그들의 목적은 디비언츠라 불리는 위협을 제거하고, 셀레스티얼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도구로 설계되었다. 이들은 감정이나 인간적 욕망이 억제된 상태로 존재하며, 오직 사명 수행만이 존재의 이유였다. 그러나 수천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터널스는 자신이 지켜온 인간 사회와 문화에 정서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감정이 없도록 설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인간을 관찰하고 함께 살아가며 그들처럼 웃고, 슬퍼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바로 이 점이 영화에서 가장 철학적인 요소 중 하나다.

드루이그는 이터널스 중에서도 가장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초반부터 이미 셀레스티얼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했고, 인간들이 서로를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변화해 가며, 이터널스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가 “나는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은, 단순히 마카리를 향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진화했음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다시 말해, 이 대사는 존재론적 선언이며, 프로그램된 생명이 아니라 자율적 주체로서의 각성을 상징한다.

이 장면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대사 자체가 극적인 연출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카리와 드루이그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설명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오랜 시간 함께한 두 존재로서, 말보다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를 통해 관계를 쌓아간다. 그 과정에서 대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이터널스가 단순한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감정과 선택의 무게를 견디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들이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완벽하게 드러난다.

또한, 이 장면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사랑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어”라는 전제는, 감정이 본능이 아니라, 학습되고 축적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드루이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경험과 관계 속에서 스스로 그 감정을 받아들였고, 선택했다. 이는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시간과 함께 자라나는지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이 대사는 또한 영화 전체의 흐름 속에서 ‘운명과 자유의 대립’이라는 중심 주제와 연결된다. 셀레스티얼의 계획대로라면, 이터널스는 감정 없이 임무만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과의 교류를 통해 감정을 배우고, 그 감정이 그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무엇이 옳은가? 왜 인간을 지켜야 하는가?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 질문들에 답하는 실마리가 된다. 이터널스가 셀레스티얼의 명령을 거부하고 지구를 지키려는 선택을 하게 되는 중심에는 단순한 정의감이 아니라, 감정, 특히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이 장면은 마블이라는 대중적 장르영화 안에서도 가장 정적인 방식으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 순간 중 하나다. 사랑은 기능이 아니라 존재의 표현이며, 명령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드루이그의 말은 단순한 감성적 고백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대한 선언이며, 인간성에 대한 재정의 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할 존재가 스스로 사랑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전체 서사와 정서적 무게를 관통하는 명백한 전환점이다. 이터널스는 이 순간, 신적인 존재에서 인간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감정, 바로 ‘사랑’이 있다.

대사가 전하는 삶의 교훈 해석

“우리는 사랑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사랑해.” 이 대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선다. 여기에는 인간이 감정을 갖는 존재로서 얼마나 복합적인 선택과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 삶에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난해한 개념 중 하나다. 이터널스가 보여준 사랑은 단지 낭만적인 감정의 흐름이 아닌, 존재에 대한 의지이며, 본질적으로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 자들의 각오이기도 하다.

사랑은 종종 본능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은 ‘그냥 좋아서’, 혹은 ‘떨려서’, ‘끌려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단순한 본능론을 넘어선다. 드루이그의 대사는 그런 전제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말은, 처음부터 사랑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게 아니라는 뜻이다. 즉, 이터널스는 처음에는 사랑할 수 없는 존재였고, 감정 없이 기능만 수행하도록 만들어졌지만, 그들이 스스로 관계를 맺고, 선택하고, 상처받고, 지켜보는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체득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사랑이 학습될 수 있고, 감정이란 본능보다 더 복잡한 층위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은 실제 우리의 삶에서도 적용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부터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 시간 속에서 신뢰가 쌓이고, 함께한 기억이 축적되며, 때로는 실망과 갈등을 겪는 과정을 통해 사랑은 완성된다. 그렇기에 진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이며, 단순한 끌림이 아닌 ‘함께 하려는 의지’에 가깝다. 드루이그의 대사는 이 점을 정확히 짚는다. 그는 자신이 기능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졌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감정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랑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하는 선언이다.

또한 이 대사는 사랑을 통한 인간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터널스는 신적인 존재로 시작했지만, 점점 인간과 유사한 갈등, 고민, 감정을 겪으며 변모해간다. 이 변화는 단순히 줄거리상의 진전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이 바뀌는 철학적 과정이다. 사랑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용기를 얻으며,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사랑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이며, 단순히 감정의 영역을 넘어선 실존적 힘이다. 드루이그가 이 감정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자율적인 존재가 되며, 이것은 인간됨의 본질과도 연결된다.

영화는 또한 사랑이 가져다주는 책임을 강조한다. 단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통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드루이그는 마카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지키려 했고, 동시에 인간을 위해 싸우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감정이 단순히 내부의 흐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은 행동을 동반해야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은 때로는 기존의 질서를 거스르고, 자신이 속한 체계마저도 부정해야 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종종 감정을 ‘비효율적’이라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취급한다. 감정은 일을 방해하고, 판단을 흐리며, 때론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이터널스가 보여주는 사랑은 오히려 그러한 판단의 근간을 흔든다. 감정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옳은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만드는 기준이며,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핵심적 요소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논리가 아닌 사랑이 이터널스의 결정을 이끌었고, 그것이 결국 지구를 지켜낸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이 말은 현대인을 설명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감정 없이 살아가는 것이 성공이라 여겨지는 시대, 우리는 점점 더 감정을 억누르고 거리 두며 살아간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사랑해”라는 고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감정으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진정한 선택은 늘 감정과 연결된다. 사랑은 논리로 해석될 수 없는 힘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요소다.

결국 이 대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사랑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 영화가 이토록 무거운 질문을 초능력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던졌다는 사실은, 이터널스가 마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철학적 무게감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은 기능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며, 결국 인간다움이란 감정에 응답하는 태도 속에서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 태도를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

“우리는 사랑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사랑해.”라는 대사는 단순히 드루이그의 고백이 아닌, 감정을 통해 인간이 된 존재의 선언이다. 그렇다면 이 태도는 우리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까. 감정이 부정되거나 소비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사랑을 ‘선택’하고 ‘유지’하는 태도는 더욱더 의식적이고 책임 있는 자세를 필요로 한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선택과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유지되는 감정이다. 그것은 기분이 아닌 태도이며, 반응이 아닌 결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터널스가 보여준 사랑의 방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실천 철학이다.

우선 첫 번째, 사랑을 감정이 아닌 ‘의지’로 인식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적인 흐름으로 이해한다. 좋아지면 사랑이고, 시들면 끝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터널스는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감정을 갖지 않도록 설계된 존재가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사랑을 배운다는 설정은, 사랑이 본능이 아닌 ‘선택’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현실에서도 진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심에서 시작된다. 힘들 때 함께하기로, 다를 때 받아들이기로, 불편할 때 대화하기로 선택하는 행위 속에 진짜 사랑의 본질이 존재한다. 사랑을 감정의 영역에만 두면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내가 매일 선택하는 삶의 태도라고 여긴다면, 관계는 훨씬 더 단단해진다.

두 번째는, 사랑이란 감정이 가진 ‘책임의 무게’를 인식하는 것이다. 드루이그는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더는 명령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마카리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택한다. 사랑이 개인의 감정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감정은 결국 더 넓은 윤리적 선택으로 확장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단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선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기꺼이 책임지는 마음, 상대를 지키기 위한 결단,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역시 모두 사랑의 확장된 형태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사랑을 더 깊고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세 번째는, 사랑이 항상 완벽하거나 이상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는 때로 사랑을 너무 높은 기준으로 바라보며, 이상적인 관계만을 꿈꾼다. 갈등이 있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르면 포기하려 든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다름과 갈등을 품는 감정이다. 드루이그와 마카리는 전혀 다른 성격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연결 지점을 찾는다. 현실에서도 사랑은 타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에서 완성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관계를 지속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을 지속시키는 요소다.

네 번째는, 사랑의 감정을 단지 개인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는 관점이다. 이터널스는 마카리에 대한 사랑을 통해 인간 전체를 위한 결정을 하게 된다. 이것은 사랑이 윤리적 실천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종종 ‘가까운 사람’에게만 사랑을 실천하고, ‘낯선 타인’에게는 무관심하거나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점차 연대와 공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족이나 연인을 넘어, 사회적 약자나 타인에게도 관심과 존중을 보내는 태도는 인간다운 삶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이처럼 감정은 사적인 감동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적인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사랑은 인간 삶의 윤리적 중심으로 작동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드루이그의 대사는 사실 두려움을 넘어선 표현이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존재로 살아오던 그가, 사랑을 표현하고 그 감정에 따르겠다는 선택은 일종의 반역이자 선언이었다.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을까 두려워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때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약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차가운 이성만이 성숙한 태도처럼 포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용기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 감정에 따를 수 있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감정을 무기 삼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자체를 삶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결국 이터널스가 전한 사랑의 메시지는, 우리 삶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의 힘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사랑은 정해진 프로그램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매일의 선택, 꾸준한 배려, 때로는 침묵 속의 기다림으로 완성되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능이 아니라 의지이며, 본능이 아니라 결심이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이 태도를 실천할 수 있다면, 단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길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를 현실 속에서 가장 정확하게 실천하는 방법일 것이다.

결론 – 감정은 선택이며, 사랑은 존재의 방식이다

《이터널스》는 마블 영화 중에서도 가장 철학적이고 정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초인적인 존재들이 세상의 창조와 파괴에 관여하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우리가 가장 공감하게 되는 순간은 다름 아닌 ‘사랑’에 관한 짧은 대사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사랑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사랑해.” 이 한 문장은 존재의 본질을 바꾸는 선언이자, 감정이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인간보다 오래 살아온 이터널스조차 시간이 지나며 사랑을 배웠다는 사실은, 우리가 감정을 얼마나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랑은 그저 우연히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매일 선택해야 하는 태도이며, 때로는 현실의 벽 앞에서 끝까지 지켜내야 할 가치다. 영화는 이터널스가 감정을 통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감정이 금지된 존재로 태어났지만, 그들은 스스로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감정으로 인해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사랑이 인간성의 핵심이며,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경험하고, 실천해야 할 감정임을 상기시킨다.

현대 사회는 점점 감정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있다. 빠른 효율, 높은 생산성, 완벽한 논리만을 강조하면서, 감정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반대로 말한다. 감정이야말로 진짜 결정을 가능하게 만들며, 사랑이라는 감정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이터널스가 셀레스티얼의 계획을 거부하고 지구를 지키기로 한 결정의 중심에는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힘이었고, 바로 그 점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각자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누군가를 이해할 것인가, 갈등을 감내할 것인가, 함께할 것인가의 물음은 결국 사랑의 형태로 귀결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의 일회성보다, 그 감정을 유지하고 실천하는 의지다. 그것은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말보다 마음을 듣고, 하루에 한 번 누군가를 배려하는 작은 행동이 모여 진짜 사랑이 된다. 우리가 그 행동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의 윤곽이 그려진다.

《이터널스》는 히어로 영화의 외피를 쓴 감정의 이야기이자, 존재의 철학을 담은 서사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능성이 자리하고 있다. 사랑은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 공동체, 인류, 나아가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으로 확장된다. 오늘 우리가 이 대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는 감정을 잃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감정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도 하루에 한 번,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보자. “나는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감정에 책임질 준비가 되었는가?” 그 질문 앞에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터널스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