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로리안』은 2019년 디즈니+의 론칭과 함께 공개되며, 단숨에 스타워즈 팬들과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 중심의 스타워즈 서사를 벗어나 TV 시리즈라는 형식으로 구현된 이 작품은, 한 명의 무명의 현상금 사냥꾼과 그가 보호하게 된 신비한 아기의 여정을 따라가며 스타워즈 세계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기존 시리즈가 '스카이워커 사가'를 중심으로 포스, 혈통, 은하 제국과 반란군의 거대한 서사를 그렸다면, 『만달로리안』은 은하계의 가장자리에 있는 작고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점차 그 서사의 본류와 연결되며 확장성과 깊이를 동시에 획득했다. 특히 이 작품은 세 가지 큰 축으로 움직인다.
첫 번째는 그로구(Grogu)라는 미스터리한 존재를 통해 포스의 새로운 가능성과 정체성의 자유를 탐구한다.
두 번째는 딘 자린(Din Djarin), 즉 만달로리안이라는 이름 없는 전사의 여정을 통해 ‘명예’와 ‘선택’이라는 테마를 조명한다.
마지막으로는 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황제 잔당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은하계의 균열이 어떻게 새로운 위협으로 번져가는지를 암시한다.
『만달로리안』은 단지 스타워즈의 외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세계관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이자, 고전적인 우주 서사에 대한 현대적인 재해석이다.
포스의 새로운 희망, 그로구
『만달로리안』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가장 큰 요인은 단연 그로구의 등장이다. ‘베이비 요다’라는 이름으로 처음 팬들의 눈길을 끈 이 작은 생명체는, 단순한 귀여움 그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그는 요다 종족이라는 신비한 혈통의 마지막 생존자일 수 있으며, 동시에 포스를 본능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존재다. 그러나 『만달로리안』은 그로구를 단순한 신비한 존재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캐릭터를 통해 “포스란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라는 스타워즈 세계의 철학적 핵심에 다시금 접근한다.
그로구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시대 이후, 포스를 가진 이들이 거의 사라진 시점에 등장한다. 그는 전통적인 제다이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스승의 존재조차 없었지만, 고통이나 위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포스를 발현한다. 이는 기존의 ‘엘리트 훈련’ 중심 제다이 관점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즉, 포스는 선택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가, 아니면 모든 생명체가 감응할 수 있는 우주의 보편적 힘인가. 『만달로리안』은 이를 그로구를 통해 시청자에게 질문한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로구의 포스 사용 방식이다. 그는 방어적이고 감정 기반이다. 동료가 위협받을 때, 생명을 구할 때, 그리고 자신이 두려움을 느낄 때 포스를 발휘한다. 이는 요다, 루크, 아나킨 등 전통적인 제다이들이 훈련을 통해 배운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즉, 그로구의 포스는 이성과 기술이 아닌, 감성과 본능에 기초한 ‘자연스러운 감응’이다. 이는 스타워즈 세계에서 포스의 존재 양식을 다시 해석하게 만든다.
그로구의 서사는 동시에 정체성의 자유와 보호의 본능이라는 현대적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를 ‘가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하지만, 그는 그저 존재하고자 할 뿐이다. 딘 자린과의 관계 속에서 그로구는 ‘무기의 일부’나 ‘포스의 계승자’가 아니라, 한 명의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그가 나중에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훈련을 받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북 오브 보바펫』(The Book of Boba Fett)에서 그로구는 루크와 함께 훈련을 받으며 제다이의 길과 딘 자린이라는 보호자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로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선택한다. 그는 제다이 교단의 엄격한 수련이 아닌, 딘 자린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다. 이는 그로구가 단순히 포스의 계승자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 성장했다는 상징적 장면이다.
이러한 설정은 스타워즈 서사가 더 이상 영웅의 길을 ‘정해진 운명’으로만 설명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로구는 포스를 가진 존재지만, 제다이의 길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는 어둠에도, 빛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자신이 느끼는 소속과 감정에 따라 삶을 선택한다. 이러한 그로구의 존재는, 기존 스타워즈 팬들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도 ‘포스’와 ‘영웅성’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다.
결국 그로구는 단순한 인기 캐릭터를 넘어, 『만달로리안』이 제시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즉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포스를 이해하고,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서사의 핵심이 된다. 그는 스타워즈의 과거를 이어받은 동시에, 그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가장 유연하고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의 희망이다.
무장한 외톨이, 딘 자린의 정체성과 변화
『만달로리안』의 주인공인 딘 자린(Din Djarin)은 스타워즈 세계관 속에서도 이례적인 인물이다. 그는 제다이도 아니고, 반란군이나 제국의 장교도 아니다. 그는 은하계의 가장자리를 떠도는 현상금 사냥꾼이며, 특정 세력에 소속되지 않은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헬멧을 벗지 않는 신념, 말수가 적고 규율 중심의 삶, 그리고 거래와 전투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은 냉소적이고 차가워 보인다. 하지만 『만달로리안』은 그를 단순한 무법자나 싸움꾼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여정을 통해 정체성과 공동체, 신념과 변화라는 스타워즈 특유의 철학적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딘 자린은 만달로어(Mandalore) 출신이 아니다. 그는 전쟁 고아였고, 어릴 적 습격당한 마을에서 가족을 잃고 만달로리안 무리에게 구조되어 입양되었다. 그로 인해 그는 ‘피의 민족’이 아닌 ‘신념의 선택’으로 만달로리안이 된 인물이다. 이는 그가 말하는 “This is the Way(이것이 길이다)”라는 만달로리안 전통 문구에 잘 드러난다. 그에게 있어 ‘길’은 태생이나 유전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실천을 통해 형성되는 가치다. 이 지점에서 딘 자린의 삶은 스타워즈 전통의 '혈통 중심 서사'와 완전히 결별한다.
시즌 1 초반부의 딘 자린은 외톨이였다. 그는 그로구를 단순히 현상금 목표로 인식했고, 임무를 완수한 뒤 보상을 받는 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로구와의 인연은 그의 내면을 천천히, 그러나 확고히 변화시킨다. 그는 그로구를 넘겨주는 대신 보호하기로 결정하고, 그 선택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점이 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의무를 넘어선 책임감, 계약을 넘어선 정서적 유대감이다. 딘 자린은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 존재의 일부이자 삶의 목적이 되었음을 인식한다.
더 나아가, 딘 자린은 만달로리안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다시 해석하게 된다. 그는 헬멧을 벗지 않는 엄격한 교리를 따르지만, 점차 그 신념이 타인의 고통과 갈등을 낳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즌 2에서 보카탄과 같은 다른 만달로리안 분파와 마주치며, 그는 자신이 속한 교단이 더 넓은 세계 속에서는 ‘극단주의’로 분류될 수 있음을 인식한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다. 과연 ‘길’이란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대와 경험에 따라 유연하게 재정의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은 시즌 2 후반부와 『북 오브 보바펫』, 그리고 시즌 3로 이어지면서 점차 구체화된다. 딘 자린은 결국 헬멧을 벗는다. 이는 단지 얼굴을 드러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넘어서 아이를 위한 결정을 내렸다는 강력한 상징이다. 그는 만달로리안으로서의 규율을 어기면서도, 보호자로서의 도리를 선택한다. 이 순간, 그는 정체성의 경계를 재설정하며, 더 이상 ‘교리에 복종하는 병사’가 아니라, 신념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선택하는 주체적 전사로 거듭난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맨드로어(Mandalore) 행성 회복 프로젝트에 관여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이제 단지 전투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재건과 의미 있는 유산의 계승을 위해 행동하는 리더로 진화하고 있다. 시즌 3에서는 결국 아머러와 보카탄 등의 다양한 만달로리안 분파를 통합하는 상징적 존재로 부상하며, 만달로리안이라는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에게 있어 만달로리안은 이제 ‘피부색, 출신, 교리’가 아니라, 선택과 책임, 그리고 연대를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의 공동체다.
결국 딘 자린은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보기 드문 방식으로 성장한 영웅이다. 그는 제다이가 아니며, 황제의 후손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통해 무엇이 옳고, 무엇이 진정한 길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존재다. 이러한 딘 자린의 여정은 고전적 영웅 서사를 현대적 가치로 재해석한 사례이며, 『만달로리안』이라는 작품이 단순한 외전이 아닌 서사의 진화이자 철학적 실험이라는 점을 다시금 증명한다.
제국의 잔재, 은하의 균열 속 부활의 조짐
『만달로리안』이 기존 스타워즈 영화들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는 축은 바로 “은하 제국의 잔재”, 그리고 그것이 퍼스트 오더로 이어지는 서사의 단초를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이 시리즈는 겉보기에는 한 명의 현상금 사냥꾼과 포스를 가진 아기의 여정을 그리지만, 그 이면에는 은하계 전반에 깔린 정치적 공백과 권력의 재편성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흐르고 있다. 시즌 1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황제 잔당의 흔적은, 단지 폐허 속에 숨어 있는 패잔병 수준이 아니다. 그것은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세력, 과학과 군사력을 유지한 지하 제국, 그리고 다시 은하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을 반영한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모프 기디언(Moff Gideon)이다. 그는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과거 제국의 전략가이자 다크 트루퍼 프로그램과 포스 사용자 클론 실험을 직접 추진하는 인물이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시청자는 즉각적으로 ‘제국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특히 그는 『스타워즈: 클론 전쟁』과 『반란군』에서 언급되었던 여러 기술적 요소와 비밀 실험들을 정교하게 연결하면서, 시리즈 전체를 제다이와 시스의 전통적 이분법 너머의 과학적 위협으로 확장시킨다.
기디언은 그로구를 납치하고 그의 피를 채취하려 한다. 이 피는 미디클로리안 수치가 높은 ‘포스 사용자’로서의 유전자를 의미하며, 이는 곧 포스 감응 능력을 인공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클론 혹은 생명체 창조의 기초 실험을 암시한다. 이는 훗날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드러나는 팔파틴의 부활, 스노크의 창조, 퍼스트 오더의 등장 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세계관적 실마리다. 『만달로리안』은 명확하게 말하진 않지만, 이 실험들은 모두 포스의 권능을 다시 제국의 손에 쥐게 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임을 암시한다.
더 나아가 시즌 3에서는 기디언이 소속된, 혹은 협력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섀도 카운슬(Shadow Council)’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는 명목상으로는 무너진 제국의 잔당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은하계 곳곳에 침투해 자원을 모으고 과학기술을 유지하며, 미래의 부활을 준비하는 정치적 지하 조직이다. 이 조직은 기존 반란군 혹은 신 공화국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분산되어 있으며, 이미 다양한 세력들과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점은 이후 『아소카』, 『스켈레톤 크루』 등으로 확장되는 디즈니+의 스타워즈 드라마 세계관에서 중심 서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점은, 신 공화국이 이러한 잔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은하계 전체의 균열과 불안정성을 가속화시킨다. 『만달로리안』 시즌 3에서 등장하는 전직 제국 과학자들과 정보 사면 프로그램, 그리고 공화국 내의 관료주의적 혼란은, 결국 퍼스트 오더가 어떻게 공백을 틈타 세력을 확장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배경을 제공한다. 『만달로리안』은 영웅의 여정과 병행하여, 은하계 전체의 힘의 균형이 다시 어둠으로 기울어가는 현실적 조건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그려낸다.
이 모든 요소는 딘 자린과 그로구의 여정과 교차하며 더욱 강력한 서사적 무게를 가진다. 그들이 단순히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점차 더 넓은 정치적 균열과 직면하게 되는 과정은 『만달로리안』을 단지 외전이 아닌, 본편 못지않은 정사(正史)의 일부로 격상시킨다. 특히 시즌 3 후반에서는 만달로어 행성의 회복과 제국의 전략이 충돌하며, 만달로리안 전사들의 부활이 단지 부족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은하 전체의 안보와 균형을 위한 열쇠임이 드러난다.
결국 『만달로리안』이 보여주는 황제 잔당은 단순한 악당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본질, 권력 공백의 위험, 신념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정치적 경고이며, 스타워즈 세계관이 여전히 현재적이고 유효한 은유임을 증명하는 서사 장치다. 이러한 정교한 연결 구조 덕분에, 『만달로리안』은 스타워즈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브릿지 시리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마무리: 외전에서 정사로, 만달로리안이 다시 쓴 스타워즈
『만달로리안』은 시작 당시만 해도 ‘스타워즈 외전’ 혹은 ‘팬들을 위한 스핀오프’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즌이 거듭되며 이 시리즈는 단순한 곁가지가 아닌, 스타워즈 서사의 중심을 관통하는 새로운 정사로 자리를 굳혔다. 그 중심에는 단연 그로구, 딘 자린, 그리고 황제 잔당이라는 세 축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각 포스의 새로운 해석, 정체성의 유연성, 권력의 회귀라는 키워드를 품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만달로리안』은 과거의 스타워즈가 놓치거나 미처 다루지 못한 영역을 서사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그로구는 포스의 존재론을 확장시켰고, 딘 자린은 전통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영웅상을 제시했으며, 황제 잔당의 서사는 단절이 아닌 연속으로서의 정치적 흐름을 설명해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단순한 이야기 장치가 아니라, 현재의 관객이 동시대적 감각으로 스타워즈 세계관에 다시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다. 과거 스타워즈가 혈통과 운명, 대의와 전쟁 중심의 서사를 펼쳤다면, 『만달로리안』은 선택, 연대, 그리고 작은 존재들의 큰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는 더 이상 우주의 운명을 거창한 영웅들만이 결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대의 스타워즈 선언이다.
결국 『만달로리안』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진짜 스타워즈인가? 그것은 광선검과 포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의와 전통을 넘어선 개인의 선택, 피가 아닌 신념으로 맺어진 유대, 과거를 딛고 새롭게 써 내려가는 이야기 — 이 모든 것이 스타워즈다. 그리고 『만달로리안』은 그 모든 것을 품은, 가장 작지만 가장 깊은 우주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