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은 대부분 세트에서 촬영되었지만, 결정적인 장면의 리듬과 질감을 위해 서울의 실제 골목·계단·가게가 로케이션으로 쓰였습니다. 이 가이드는 팬과 여행자를 위해 ‘자하문 터널과 계단’, ‘스카이피자와 기택 가족 동네 골목’, ‘돼지쌀슈퍼와 반지하 주변 풍경’이라는 세 공간을 중심으로 영화 장면과 봉준호의 연출 의도를 해설하고, 안전하고 예의 바른 탐방을 위한 동선·현장 매너·문화적 맥락을 제시합니다. (운영 시간·상호·주소는 수시로 변동될 수 있으니 방문 전 반드시 최신 정보를 확인하세요.)
여행 개요
<기생충>의 공간 설계는 ‘위/아래’, ‘밝음/어둠’, ‘사적/공적’ 같은 대비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부잣집 저택과 반지하의 명암 대비가 서사의 골격이라면, 서울 골목의 계단과 터널, 동네 가게의 생활감은 장면의 ‘바람’과 ‘냄새’, 즉 피부 감각을 부여합니다. 최근 서울은 이 영화의 성공과 함께 로케이션을 찾는 발길이 늘었지만, 이곳은 누군가의 일상과 생업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영화 속 서울’을 따라가되, ‘서울 사람의 서울’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걷는 것이 이 가이드의 기본 전제입니다.
촬영지 1|자하문 터널과 계단 –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서울의 중력
영화 속 장면과 의미
폭우가 쏟아지던 밤, 기택 가족이 부잣집에서 황급히 빠져나와 끝없이 내려가는 시퀀스는 <기생충>의 공간·계급 은유를 가장 강렬하게 시각화한 대목입니다. 고지대의 넓은 마당 ‘위’에서 시작된 도주는 계단·경사·비좁은 골목을 거쳐 ‘아래’의 반지하로 도달합니다. 계단은 단순한 동선이 아니라 ‘신분의 벡터’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롱테이크에 가까운 호흡과 반복적 프레이밍, 젖은 아스팔트의 반사광을 활용해 도시가 인물들을 중력 방향으로 ‘흡수’하는 감각을 만듭니다. 자하문 터널 인근 계단과 주변 경사로는 이런 장면의 살결을 빚어낸 실제 배경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터널의 곡선, 노면의 물기, 터널 끝에서 쏟아지는 노란 조명은 ‘비 내린 서울’의 텍스처를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봉준호의 카메라와 소리
이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낮은 위치에서 인물의 다리, 비닐봉지, 물바닥을 따라가며 ‘발’의 세계를 클로즈업합니다. 인물의 표정보다 호흡과 물소리·차량 바퀴 소음·터널 잔향이 서사를 이끕니다. 사운드팀은 빗줄기·맨홀 넘침·스니커즈의 물컹한 마찰음을 층층이 쌓아 심리적 압박을 구축했습니다. 터널은 자체적으로 잔향을 키우는 ‘거대한 악기’처럼 작동해 장면의 공포를 증폭합니다.
찾아가기와 걷기 팁
자하문 터널은 종로구 북악산 자락(부암동·청운동 경계) 고갯길에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일대에서 버스·택시를 이용하면 10~15분 내 접근 가능하고, 도보로는 경사가 있어 초행자에겐 버스를 권장합니다. 촬영 포인트로 알려진 계단은 터널 양 끝 외곽에 다수 존재하는데, ‘정확히 이 계단’이라는 표식이 있는 관광지가 아니므로, 성지가 아닌 ‘생활 동네’임을 잊지 말고 주거지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합니다.
현장 매너·안전
터널 주변은 차량 통행이 많아 야간 삼각대 설치·차도 진입은 매우 위험합니다. 보행로 내 촬영, 플래시 최소화, 생활 소음 자제는 기본입니다. 비 오는 날 바닥이 미끄러우니 밑창 패턴이 깊은 워킹화를 추천하며, 우천 시 배수구·계단 모서리 회피 동선이 안전합니다.
문화적 보기
자하문 일대의 카페·소규모 갤러리·마을 버스는 ‘서울의 낭만’으로 소비되기 쉽지만, 영화는 그 위에 ‘서울의 현실 무게’를 얹습니다. 위계가 구조화된 도시에서 비는 단지 날씨가 아니라 분류 체계입니다. 물이 모이는 곳과 마르는 곳, 잔향이 긴 곳과 짧은 곳—이 차이가 삶의 결을 가릅니다. 그 감각을 채집하듯 걷는 것이 이 코스의 핵심입니다.
촬영지 2|스카이피자 & 기택 가족 동네 골목 – 포장 상자와 생활의 냄새
영화 속 장면과 의미
초반부 기택 가족이 ‘피자 상자 접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은 생활의 촉감으로 관객을 세계에 입장시킵니다. 접힌 상자의 모서리, 테이프의 질감, 반지하 창으로 스며드는 담배 연기와 하수 냄새—이건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후각의 영화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동네 피자 가게로 널리 알려진 곳이 ‘스카이피자’(촬영 당시 상호)입니다. 영화는 상업 간판의 형광빛, 골목의 배수구, 전선 더미, 가게 문턱의 문지방까지 ‘서울 하층의 물성’을 꼼꼼히 수집합니다. 상자 접기의 리듬과 반복은 생계의 박동이자, 나중에 가족 전체가 ‘동원’되는 사기극의 전주곡입니다.
봉준호의 디테일
카메라는 때때로 과장된 클로즈업 대신 생활 거리(1~2m)를 유지하며 ‘관찰자’처럼 머뭅니다. 피자 상자의 불량률을 둘러싼 실랑이는 유머로 포장되지만, 셔터 문이 덜컥 내려올 때의 금속음·형광등 깜빡임·테이프 찢기는 소리까지 편집은 치밀하게 리듬을 설계합니다. 후반부 ‘냄새’ 대사가 던지는 파문도 이 초반부 생활음의 아카이브 위에서 더 깊이 울립니다.
찾아가기와 동선
스카이피자는 서울 서남권의 주택가 상권(지하철역에서 도보 또는 짧은 버스 접근)으로 알려졌으며, 촬영 당시와 현재의 상호·운영 형태가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지도 앱에서 ‘스카이피자(기생충)’을 검색하면 팬들이 남긴 포토 지도·후기가 나타나기도 하나, 영업 중 매장·주거지 밀집 지역이니 과도한 사진 촬영·동선 점유는 자제해 주세요. 골목 탐방은 대로변→보행자 골목→가게 순으로 ‘안전-소음-사생활’을 고려한 경로가 좋습니다.
현장 매너·안전
실제 영업장·주거지이므로, 매장 이용 없이 장시간 촬영·진입은 삼가고, 내부 촬영은 직원 동의를 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배달 오토바이 동선이 빈번하므로 모서리 회전 시 반사·시야 확보가 필수입니다. 취식 시 쓰레기 되가져가기, 담배 금연 구역 준수, 야간 소음 최소화는 기본 매너입니다.
문화적 보기
피자 상자는 일자리인 동시에 계급적 상징입니다. 가볍고 접히며 빨리 쌓이지만 쉽게 ‘불량’이 됩니다. 빠르게 반복되는 도시의 노동, ‘대체 가능한 손’에 대한 냉혹한 시선을 상자가 대신 견딥니다. 그 상자를 파는 상점의 따뜻한 불빛과 골목의 차가운 콘크리트가 맞물리는 곳—바로 그 경계에서 <기생충>의 현실 감각이 태어납니다.
촬영지 3|돼지쌀슈퍼와 반지하 주변 풍경 – 돌, 창, 물, 숨
영화 속 장면과 의미
기우가 친구 민혁으로부터 ‘수석(장석)’을 받는 장면은 ‘돼지쌀슈퍼’ 앞에서 이루어졌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기호학’을 선명하게 전환합니다. 반지하의 사물과 냄새로 시작한 세계에 상징(수석)이 들어오면서, 욕망이 구체적으로 형태를 얻습니다. 이후 수석은 인물의 욕망을 ‘끌고 가는’ 물체가 되고, 폭우 속 떠다니는 수석의 이미지는 상징의 무력화, 혹은 욕망의 역류를 암시합니다. 슈퍼 앞 노출 배수관, 철문, 전단지, 아이스크림 냉동고와 같은 디테일은 ‘서울 변두리의 공기’를 구성하는 소품이자, 인물들의 삶의 배경입니다.
봉준호의 프레임
반지하 창은 <기생충>의 대표적인 시선 장치입니다. 지면보다 낮은 창턱으로 스며드는 빛, 오줌 갈색의 물기, 쓰레기차의 소리, 길고양이와 취객의 그림자—이 창은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가’를 규정합니다. 감독은 반지하의 저층 프레이밍과 슈퍼 앞의 개방 프레이밍을 교차해 ‘열림의 환상’과 ‘닫힘의 감각’을 번갈아 맛보게 합니다. 그 위에 물(비와 오수)이 이야기의 엔진으로 작동하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수리(水利)·배수 체계가 인물의 운명과 직접 결합합니다.
찾아가기와 동선
돼지쌀슈퍼로 알려진 점포는 서촌·종로 북촌 외곽·서북권 주거지 등 다양한 후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곤 했고, 촬영 이후 상호 변경·폐업·리뉴얼 등 변동이 잦습니다. 상호·주소·운영 형태는 수시로 바뀌므로 방문 전 지도 서비스·최근 리뷰로 반드시 확인하세요. 반지하 풍경은 서울 전역의 오래된 주거지에 분포합니다만, 사생활 보호가 최우선입니다. ‘사진만 찍고 도망치는’ 방식이 아니라, 동네 카페·슈퍼·분식집을 이용하며 조용히 걷는 ‘손님’의 태도를 추천합니다.
현장 매너·안전
골목은 협소하고 차량·오토바이가 혼재합니다. 이어폰을 빼고, 모서리 회전·차량 후진 경로에 유의하세요. 거주 건물·창문·우편함·차량 번호판 촬영·게시물 확대 촬영 등은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항상 전제하세요. 비 예보가 있을 때는 배수로 범람·맨홀 뚜껑 주변 보행을 피하고, 신발은 방수 로우하이커나 러버 솔 운동화를 권장합니다.
문화적 보기
슈퍼는 동네의 정보 허브이자 ‘현금 흐름’의 온도계입니다. 외상 장부, 포인트 적립, 배달꾼의 드나듦, 상인들의 담소—이 모든 요소가 영화의 ‘배경 소리’를 구성합니다. 돌(수석)·창(반지하)·물(폭우)·숨(지하실의 비밀)은 이 영화의 네 가지 원소입니다. 이 네 가지 원소가 만나는 골목을 느리게 걸어보세요. 영화가 텍스트라면, 골목은 그 텍스트의 종이 결입니다.
여행 팁 & 마무리 – 안전·존중·감각으로 걷는 ‘봉준호의 서울’
권장 동선(반나절~하루)
오전엔 자하문 터널 인근(부암동 카페·갤러리 포함)을 산책해 ‘위에서 아래로’의 지형감을 체득합니다. 낮에는 스카이피자 인근 주택가 상권으로 이동해 점심·카페를 이용하고, 골목의 생활 리듬을 관찰합니다. 해질녘에는 (운영 중일 경우) 돼지쌀슈퍼로 알려진 상점이 있는 주거지 외곽을 조용히 걷되, 촬영은 최소화하고 주변 상권을 실제로 이용하는 ‘손님’으로 머무르세요. 장거리 이동이 부담되면, 두 권역만 선택해도 충분합니다.
교통·시간
서울은 지하철·버스가 촘촘하지만 경사로·계단이 많습니다. 지도상의 거리보다 체력 소모가 큽니다. 주말·야간엔 골목 주차가 빽빽해 보행자 공간이 줄어들 수 있어, 대로변에서 진입하는 루트를 사전 파악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비 예보 시 ‘우산+방수 재킷+여벌 양말’을 준비하면 피로도가 크게 줄어듭니다.
예산·이용
입장료가 있는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권이므로, 카페·식당·가게 이용이 ‘촬영 허가’의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한 곳에서 1인 1주문, 재빠른 자리 회전, 쓰레기 되가져가기, 포장 시 줄서기 매너를 지키면 지역 상권에도 도움이 됩니다. 동네 사진관(인화)·문구점(우산·건전지) 같은 ‘생활 인프라’도 유용합니다.
현장 매너 체크리스트
① 주민·차량·오토바이 동선 최우선
② 사유지·현관·우편함·창문 촬영 금지
③ 삼각대·조명 사용 최소화
④ 야간 소음 자제
⑤ 매장 내부 촬영은 사전 동의
⑥ 위치 태그·상호 노출 시 과도한 유입 유발 문구 자제(운영에 부담)
⑦ 비상 시 112·119 신고 위치 파악.
영화 읽기의 즐거움
<기생충>의 로케이션을 걷는다는 건, ‘영화가 어떻게 현실을 훔쳤는지’를 역으로 탐정처럼 추적하는 일입니다. 물기 오른 노면의 반사, 형광등 깜빡임, 계단 난간의 차가움, 가게 셔터의 주름—이 작은 물성들이 모여 장면의 감정을 만듭니다. 성지순례의 성적표(인증샷) 대신, 그 물성과 리듬을 채집해 보세요. 그날의 서울은 영화보다 더 영화처럼 다가옵니다.
마무리
봉준호의 서울은 위계의 도시이되, 사람의 냄새가 있는 도시입니다. 그 냄새를 폄훼하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물성과 빛으로 포착한 것이 <기생충>입니다. 우리가 걸을 차례입니다. 안전과 존중을 들고, 천천히. 골목의 바람과 습기를 맨살로 느낄 수 있다면—당신은 이미 영화 속 한 장면의 한켠에 서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