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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큐레이션이 빛나는 테마 서점 7선

by 머니인사이트001 2025. 4. 13.

책방은 이제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곳을 사유의 장소로, 또 누군가는 일상의 안식처로 느낍니다. 특히 아시아 곳곳의 독립서점들은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가’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큐레이션이 공간을 결정하고, 공간이 결국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구조. 이 글에서는 그런 철학이 살아 있는 아시아의 테마 서점 7곳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각기 다른 도시, 다른 큐레이션, 그리고 서로 다른 시간을 품은 멋진 공간들입니다.

한국 서울 – 스페이스 오뉴월

스페이스 오뉴월은 서울 종로구 원서동, 북촌 한옥마을 인근에 위치한 문학과 예술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서점이자 갤러리, 그리고 출판사 기능을 함께 수행하며, 큐레이션은 ‘작가와의 대화’를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내부 공간은 좁지만 집중도가 높은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벽면은 갤러리처럼 비어 있고, 바닥에는 책이 아닌 원화나 원고가 전시되기도 합니다. 서가는 장르 중심이 아닌 테마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예컨대 한 달 동안은 ‘기억’, 다음 달에는 ‘저항’, 그 다음에는 ‘물성’이라는 키워드로 책이 구성됩니다. 이곳은 단순히 ‘무엇을 읽을까’보다,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묻는 공간입니다.

매달 열리는 낭독회, 문학 특강, 번역가의 대화 등은 서점의 큐레이션이 단지 진열에 그치지 않고 ‘사건’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합니다. 한옥 지붕 아래 사유가 쌓이는 곳. 스페이스 오뉴월은 서울에서 가장 문학적인 공간 중 하나입니다.

일본 도쿄 – B&B Bookstore

도쿄 시모키타자와 지역에는 독특한 콘셉트의 서점이 하나 있습니다. B&B. 이름 그대로 이곳은 책과 맥주가 함께하는 ‘살롱형 서점’입니다. 일반적인 독립서점과 달리 이곳은 저녁 시간에 더 활기를 띱니다.

서가는 일반적인 분류와 다르게, 테마와 추천 위주로 큐레이션됩니다. 예컨대 "지금 일본 사회가 읽어야 할 책", "기후와 도시", "좋은 실패란 무엇인가" 같은 이름의 코너들이 있고, 각 코너마다 책을 선정한 스태프의 소개글이 놓여 있습니다.

공간 자체는 열린 구조로, 낮에는 조용한 책방이지만 밤이 되면 무대 조명이 켜지고 저자 강연이나 디스커션이 열립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맥주와 음료를 마시며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문화입니다. 책을 읽으며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구조, 그것이 B&B가 추구하는 공간 철학입니다.

공간 큐레이션이 빛나는 테마 서점 7선
공간 큐레이션이 빛나는 테마 서점 7선

대만 가오슝 – 三餘書店

대만 가오슝에 있는 三餘書店은 지역성에 뿌리를 둔 사회비평 중심의 서점입니다. 이름 ‘三餘’는 "시간의 여백, 공간의 여백, 마음의 여백"을 뜻하며, 책을 통해 사유를 남기려는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서점은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을 일부 보존한 2층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만들어졌으며, 외관은 고풍스럽고 내부는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1층은 서점, 2층은 지역 사회 관련 전시와 강연장이며, 지역의 사회운동가, 작가, 교육자들과의 교류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책은 대만 독립출판물, 지역 언론, 사회비평서, 환경 이슈, 여성주의 관련 도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히 판매보다 독자와의 토론을 유도하는 큐레이션이 강점입니다. 대만의 정치적 흐름과 청년 문화를 엿보고 싶다면, 이 서점은 좋은 시작점이 됩니다.

베트남 호치민 – Humming Books

Humming Books는 베트남 호치민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2군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서점 겸 북카페입니다. 이곳은 독립출판물과 현대 베트남 청년 문학을 중심으로 책을 선별하고, 커피 한 잔과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감성 공간입니다.

내부는 흰 벽과 원목 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광이 충분히 들어오는 구조 덕분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책은 베트남어와 영어가 반반씩 배치되어 있으며, 현지 작가들의 단편 소설, 산문, 시집은 물론 베트남 전통 문화나 음식에 대한 독립 잡지도 큐레이션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책을 고르는 즐거움’보다는 ‘책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가끔 음악 연주나 시 낭독회도 열리며, 작고 깊은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관광지에서 조금 벗어나 조용한 감성 여행을 원한다면 Humming Books는 훌륭한 선택지가 될것 입니다.

태국 방콕 – Candide Books

Candide Books는 방콕의 젊은 문화 지구인 창차오 지역에 위치한 독립출판 중심 서점입니다. 이름은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서 따왔으며,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큐레이션이 특징입니다.

서점은 리버사이드의 오래된 창고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구조로, 커다란 철제 서가와 높은 천장이 인상적입니다. 책은 사회비평, 정치철학, 페미니즘, 환경 문제 등을 주제로 한 출판물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태국 로컬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입니다.

특히 젊은 작가와 번역가 중심의 북토크와 페어가 자주 열리며, 출판물 이외에도 포스터, 독립영화 DVD, 리소프린트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함께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읽는 책’보다는 ‘질문을 유도하는 책’을 큐레이션하는 공간으로, 방콕의 진짜 젊은 감각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 – Tintabudi

Tintabudi는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의 조용한 거리에 위치한 철학과 인문서적 전문 서점입니다. 이름은 말레이어로 ‘문자(문학)의 지성’을 뜻하며, 철학자들의 말과 시인의 문장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 서점은 일반적인 독립서점과는 다르게, 양질의 인문학 중심 도서 큐레이션이 핵심입니다. 미셸 푸코, 하이데거,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같은 사상가들의 저작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로컬 작가들의 비평집, 저널, 소수 언어 출판물 등이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공간 자체는 매우 소박하고 조용하며, 책을 천천히 읽고 깊게 사유할 수 있는 독립 좌석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이처럼 철학 중심으로 책을 큐레이션하는 공간은 매우 드뭅니다. 조호르바루를 방문할 일이 있다면, Tintabudi는 반드시 들러야 할 곳입니다.

싱가포르 – Grassroots Book Room

싱가포르의 Grassroots Book Room은 중화권 문학과 지역 비평서에 특화된 독립서점입니다. 1995년 설립된 이 서점은 중국 본토 출판물, 대만 독립출판, 홍콩 사회비평서 등을 함께 다루며 싱가포르 현지 언론인, 작가, 학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서점은 차이나타운 근처의 좁은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외관은 간결하지만 내부는 매우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장마다 주제별 태그가 부착되어 있고, 작가의 추천글이나 스태프 코멘트가 책과 함께 진열되어 있어 읽기 전부터 흥미를 자극합니다.

특히 이곳은 중국어를 사용하는 독자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의 사회문제와 인권 이슈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한 큐레이션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저자 강연과 청소년 독서 캠프도 운영하며, 싱가포르 내 출판 다양성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서점은 공간이고, 공간은 세계입니다

책을 고르고 사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책을 ‘어디에서’ 만나고, ‘어떻게’ 경험할지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도쿄, 가오슝, 호치민, 방콕, 조호르바루, 싱가포르. 이 도시들의 서점들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공간의 큐레이션’입니다.

책을 단지 판매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서 공간에 배치하는 것. 그것이 이 서점들의 철학이고, 우리가 이곳을 여행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