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흔히 ‘진단이 어렵다’, ‘치료가 없다’, ‘환자 수가 적다’는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희귀질환은 병의 수만 수천 종이 넘고, 하나하나의 환자 수도 매우 적어, 병 자체를 모르는 의료진도 많습니다. 그만큼 진단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환자와 가족들은 막막함 속에서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의료 인공지능(AI)이 이 분야에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의사가 모르는 병을 어떻게 기계가 아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AI가 가진 장점은 ‘작은 단서를 놓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희귀질환 진단에 AI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점이 아직 부족한지를 차분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AI가 희귀질환 진단에 사용되는 이유
희귀질환은 진단까지 평균적으로 5년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환자가 처음 증상을 느끼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도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의사 한 명이 평생 경험할 수 있는 희귀질환의 수는 매우 한정적이고, 그 증상이 일반 질환과 비슷한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AI는 이러한 문제에서 다른 접근을 시도합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비교하고, 과거 사례와의 유사성을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희귀 유전질환의 경우 유전자 서열 데이터를 분석해 수많은 돌연변이 중 어떤 것이 질환과 관련 있는지를 찾아내는 데 AI가 활용됩니다.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안면기형이나 뇌구조의 미세한 변화를 인식해 진단 단서를 제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AI는 ‘지치지 않는 분석자’라는 점에서 의료진의 든든한 조력자가 됩니다. 사람은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경우를 기억하거나 일관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AI는 동일한 조건이면 항상 같은 결과를 도출합니다. 반복된 오류를 줄이고, 드물지만 중요한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희귀질환처럼 단서가 적은 진단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기술적 시도들
AI가 진단에 쓰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희귀질환 분야는 ‘데이터가 적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단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이학습’이나 ‘few-shot learning’ 같은 방식이 많이 쓰입니다. 이 방식은 이미 축적된 일반 질환 데이터를 활용해 기본 학습을 진행한 뒤, 소수의 희귀질환 데이터를 추가로 학습시켜서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흔한 피부 질환 이미지로 먼저 학습시킨 후, 극히 적은 희귀 피부병 사례를 학습시켜도 꽤 괜찮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의료계에서는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도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단순히 AI가 ‘이 질병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증상이나 데이터를 근거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의사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AI 결과를 임상에 신뢰하고 반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국내 연구에서는 안면인식 AI를 통해 특정 유전 질환이 의심되는 안면 구조를 가진 환자를 조기 분류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단순한 진단 보조를 넘어, 진단의 방향 자체를 제시하는 형태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희귀 데이터’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AI가 진단을 잘 하려면 결국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해야 합니다. 그런데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고, 관련 정보도 분산돼 있어 데이터 확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의료기관, 연구소, 제약사들이 손을 잡고 데이터 공유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유럽의 ‘Orphanet’이나 글로벌 ‘IRDiRC(국제 희귀질환 연구 컨소시엄)’에서는 각국의 희귀질환 데이터를 표준화해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일부 병원에서는 유전체 데이터와 전자의무기록(EMR)을 통합하여 희귀질환 분석용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습니다.
다만, 데이터 공유에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특히 희귀질환은 개인 식별이 쉬운 정보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와 환자의 동의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의 존엄성과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진단을 넘어 치료까지…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AI가 희귀질환 진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특히 아직 진단되지 않은 수많은 희귀질환의 경우, AI조차도 데이터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AI의 활용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단 이후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 방법을 제안하거나, 유전자 치료 가능성을 분석하는 데 AI가 쓰이기도 합니다. 국내외에서는 AI가 새로운 약물 후보군을 제안하고, 임상시험 대상자를 선별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진단을 넘어 치료와 예후 예측까지, AI는 희귀질환 관리의 전 주기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AI는 희귀질환 환자에게 ‘조금 더 빠른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희귀질환을 진단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지 수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시간 동안 환자와 가족이 겪는 불안, 혼란, 경제적 부담은 상상 이상입니다. AI는 이 시간을 단축시키고, 조금이라도 빠른 대응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보기 어려운 패턴을 찾아내고, 바쁜 의료진을 보조해주는 AI는 앞으로 더 많은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AI가 그저 ‘똑똑한 기계’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기술과 사람의 조화로운 협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입니다.